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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로 퇴거 임박한 ‘정릉골’ 사람들…“40년 살던 동네 떠나 어디로 가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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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이 작성일24-08-20 12:52 조회4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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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과 강북을 오가는 143번 시내버스를 타고 성북구 정릉 종점에 내려 정릉천을 건너면 ‘정릉골’이란 마을이 나온다. 북한산 자락에 낡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정릉골. 이 마을은 1960~70년대 청계천 일대 무허가주택 철거로 살 곳을 잃은 이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하며 만들어진 달동네다.
지난달 31일 찾아간 정릉골은 얼핏 보기에 빈집들만 남은 동네로 보였다. 대문 안으로 깨진 유리창이나 쓰레기 쌓인 마당이 방치된 집들이 보였다. 하지만 미로 같은 좁은 골목을 따라 이리저리 다니다 보면 사람 사는 흔적이 눈에 들어왔다. 빨랫줄에 널린 옷가지, 담벼락 아래 쌓인 연탄재, 그려진 지 얼마 되지 않은 분홍색 벽화 같은 것들이 사람 냄새를 풍겼다.
한민경씨(59)는 정릉골에 살면서 마을 가꾸기에 앞장 서온 주민이다. 마을 입구에서 만난 한씨는 근심 어린 얼굴로 골목 한쪽에 쌓인 의자와 서랍장 등 폐가구들을 바라보았다. 한씨는 그제까지만 해도 안보였던 짐인데 누가 그새 또 이사를 나갔나 보다며 이주계획이 시작된다고 하니 이사 나가는 사람들이 한 명 두 명 생겨난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도 곧 이렇게 이사를 나가야 할까 걱정이라고 했다.
정릉골은 재개발을 거쳐 고급 타운하우스로 조성될 예정이다. 정릉골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에 따르면 20만3965㎡ 면적에 지상 4층·지하 2층 규모 타운하우스가 1417세대가 들어선다. 이를 위해 조합은 8월부터 내년 1월까지를 이주기간으로 설정했다. 지분이 있는 조합원이라면 타운하우스 완공 뒤 돌아올 수 있겠지만, 한씨 같은 세입자들은 새로 살 곳을 찾아 떠나야 한다. 정릉골에는 한씨 같은 세입자가 405세대 가량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씨는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하다고 했다. 한씨가 정릉골 중턱에 있는 초록색 대문집의 5평 남짓한 단칸방을 얻어 남편과 둘이 살기 시작한 건 17년 전이다. 인근 대학교 청소노동자로 일하는 그는 직장도, 지인도 전부 정릉골 주변에 있다. 새벽 일찍 일을 나가야 하기에 정릉골에서 너무 멀어지면 직장까지 잃게 될까 걱정이 크다. 한씨는 옷은 없으면 사 입으면 그만인데 집이 없으면 그냥 갈 데가 없어지는 것 아니냐며 나이 먹고 떠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하도 심란하니 괜히 매일 같이 짐 정리만 하게 된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재개발 얘기가 나오기 시작한 건 30년도 넘다보니 이번에도 그냥 지나가겠거니 했다고 한다. 마을 초입에서 만난 70대 A씨는 곳곳에 붙은 재개발 안내문을 보며 저런 스티커가 붙어 있은 지 오래됐다. 재개발 된다, 안 된다 말만 많아서 그런가 보다 한다고 말했다.
마을이 워낙 낙후된 상태다 보니 주민들도 재개발 필요성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너무 낙후돼서 물이 안 나오기도 하니까 재개발이 되긴 돼야죠. 근데 원래 살던 사람들은 다 쫓겨 나가서 이 동네가 아예 사라지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한씨가 말했다.
한씨네 맞은편 마당 넓은 집에 사는 김영리씨(55)는 정릉골 토박이들에 비하면 젊은 층에 속한다. 두 사람을 비롯한 주민들이 마을 곳곳에 꽃을 심고 혼자 사는 어르신들을 만나러 다녔던 것은 ‘서울에 영화 <웰컴 투 동막골> 같은 마을이 여기 말고 또 어디 있겠나’ 하는 긍지 때문이었다.
김씨는 ‘달동네’ ‘빈집 슬럼’ 같은 표현은 정릉골의 삶을 온전히 설명하지 못한다고 했다. 김씨는 낡은 자취방 같은 집에 살아도 그 좁은 공간을 쓸고 닦고 하면서 공동체를 가꾸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며 투기 목적으로 집을 사놓은 사람들이 방치한 폐가만 보고 정릉골을 싹 다 쓸어내야 한다는 논리로 얘기들을 하는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정릉골엔 잎이 무성한 라일락 나무가 유독 많다. 내년 이맘쯤에도 나무들이 그 자리서 자라고 있을진 알 인스타 팔로우 구매 수 없다. 한씨는 담벼락에 기대 하늘 높이 자란 나무를 가리키며 서울 어디에도 이렇게 굵은 라일락 나무가 없을 텐데, 재개발로 라일락도 다 사라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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